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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웨탄의 발견

邵族(사오)

사오족은 르웨탄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으로 남도 민족의 한 종족에 속합니다. 사오족은 청나라 도광 이전에 쉐이사리엔에서 방대한 세력을 보유하고 지금의 위츠, 먀오란, 쉐이서, 스인, 야푸와 터우서 등 지역에서 6대 부락을 형성하였지만, 함풍에서 광서년 이후에 한족의 이주 및 개간에 전염병까지 창궐하자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청나라 지배 후기에 통치 관원들이 개방 정책에 주력하여 한족이 아무런 간섭 없이 개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종족의 인구 접촉까지 더해지면서 종족 사람들은 외부의 여러 질병에 대한 면역체가 없었기 때문에, 사오족 인구는 18세기 하반기에 급격하게 감소하여 원래 수천 명에 달하던 인구가 청 말기에는 300명 정도로 감소되었습니다.

 

일제시대 사오족은 향후 일본인의 르웨탄 수력발전 공사로 인한 두 번째 이주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부지서, 즉 지금의 이다사오(르웨촌)로 이주하였으며, 원래 터우서에 거주하던 종족은 따핑린으로 이주하였습니다.

 

타이완 광복 후, 정부의 원주민 민족군 분류 방식은 대체적으로 일제 말기 일본학자 이노 카노리 등의 구족 분류 방식을 사용하였고, 대부분 멸망 위기에 처한 「숙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처리하지 않아서 일반적으로 「핑푸족」이라 총칭하였습니다. 「숙번」에 속하는 사오족은 아리산에서 온 조상이 흰사슴을 쫓다가 르웨탄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1951년 「고산족 신분」 조사를 실시할 때 차오족으로 편입되었습니다(차오족은 현재 저우족으로 정식 명명되었지만, 사오족은 아직도 「차오족 평지 원주민」명칭으로 편입되어 있습니다).

 

사오족의 족군 분류 문제는 광복 후의 연구에서 이미 매우 구체적으로 밝혀졌으며, 사오족은 언어, 혈연이나 사회 문화 특징 방면에서 모두 저우족과 매우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사오족의 조상은 사오(Thao)로 일맥상통하며 사오족의 족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여 년간 사오족은 한족의 이주 및 국가 정치력의 영향을 받으며 사오족의 전통 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겪었지만, 역사적 격동 속에서도 사오족은 주변의 족군과 힘을 합쳐 함께 번영하는 사회를 구축하였습니다.

 

 布農族(뿌농족)

뿌농족(Bunun)은 청나라 문헌 속에 우룬족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뿌농어로 「사람」이라는 자칭어 Bunun이 중역된 것입니다. 타이완 원주민족의 하나로, 중앙산맥 양쪽에 거주하는 전형적인 고산 민족이며, 주로 해발 1,500미터 이상의 고산 지대에 거주하고, 2013년 10월 기준으로 인구는 55,206명입니다. 이주에 대해서 말하자면 뿌농족은 타이완 원주민 중에서 인구 이동 폭이 가장 크고 확장력이 가장 강력한 종족입니다.

 

뿌농족의 구전 역사와 뿌농족 전설에 따르면, 롼서군(Taki Banua)은 선조의 원래 거주지가 Lokaang(지금의 장화현 루강진 일대)이었고, 쥔서군(Ish Bukun)은 린지푸(지금의 난터우현 주산진), Taulok(지금의 윈린현 더우리우시)와 Lamtao(지금의 난터우현 난터우시)등 지역인 Linpao(Linkipao)였다고 하지만, 이 지역 명칭은 모두 뿌농어에서 유래된 것이 아닙니다.

 

뿌농족이 마지막으로 산간 지역으로 이주하기 전의 원래 거주지는 타이완 서부의 평원 일대인 Lamongan(붉은 땅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난터우현 서랴오, 밍지엔 일대)이었으나, 나중에 점차 중앙산지로 이동하였습니다.

 

18세기, 지금의 난터우에 거주하던 뿌농족은 대규모 이주를 시작하였는데, 한 무리는 동쪽으로 지금의 화리엔 줘쉐이향, 완롱향으로 이주한 후, 다시 화리엔에서 지금의 타이동 하이돤향과 옌핑향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또 다른 무리는 중앙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지금의 가오슝의 나마샤구와 타오위엔구 및 타이동의 하이돤향과 옌핑향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민족 대이동의 결과로 뿌농족의 분포 범위도 확장되어 난터우, 가오슝, 화리엔, 타이동 등 현 내에 분포되어 있습니다.